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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ic Human

인간은 자만을 통해 비로소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산업가들은 세상을 문제가 있고, 그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좋아하고, 그러한 인재들을 찬양한다. 반면 아티스트들은 세상을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할수 있고 수많은 관계를 형성할수 있는 공간으로 본다.

당신이 산업가 쪽에 있는지 아티스트 쪽에 있는지 알아보는 질문이 있다. 스스로 답해보아라.

 

어떻게 더 많이 얻을 것인가? vs 어떻게 더 많이 나눌것인가?

어떻게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 vs 어떻게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지도는 어디에 있나? vs 미지의 땅은 어디에 있나?

자금을 충분히 확보할수 있는가? vs 아트에 충분히 많이 도전했는가?

 

기계들이 곧 대체할 일은 다음과 같다.

목화를 따고, 건초를 쌓고, 화물을 옮기고, 양식대로 기입하고, 설명서에 따르고, 시험에 통과하고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알아내고, 연결하고, 방문하고, 질문하고, 배우고, 위험을 무릎쓰고, 마음을 열고

 

인간은 자만을 통해 비로소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 하지만 산업가들은 자만을 금기시 해오고 자만하는 자들을 일부러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금 벌을 주었다.  그래야만이 본인들의 시스템이 잘 돌아가기 떄문이다.

우리의 겸손은 이미 차고 넘친다. 적은 봉급에 만족하는 근로자, 까다로운 질문을 숨기는 학생,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 작품을 감추는 아티스트 등등.. 삶의 주도권을 기꺼이 시스템에 양도한채 비난받지 않고 살아가는 일에만 붙들려 살고 있다.

아트에 대한 보상은 즉각 주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까지, 그리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감동을 전달할 때까지 그것은 진정한 아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은 아트를 위한 3가지 방법이 있다.

1) 더 높이 날자 (자만해라)

2)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가자

3) 그리고 그들과의 연결을 모색해라

 

아티스트는 강력한 의지와 용기를 하나로 모아 수치심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비난은 어쩔수 없지만, 수치심은 얼마든지 거부할수 있다.청중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도, 수치심이 가져다주는 어두운 감정에서는 한발 비켜서는 것이다.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당신이 아티스트라면 이러한 모토를 가져야 한다.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피하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아티스트 일수록 리뷰와 댓글에 집착한다. 그러나 거기서는 아무것도 배울게 없다. 자신의 아트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파악하고 그 특정 사람들과 더 많이 교류하는 식으로 아트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잊어라. 

 

아트를 해라. 도전을 해라. 성공 할수도 있다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그리고 도전적인 그리고 위험한 아트를 했다면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당신이 사라졌을때 많은 이들이 당신을 그리워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대체불가능한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이다.

 

- 이카루스 이야기, 세스 고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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